아파트 분양가 할인의 법률관계 부동산법률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건설사들이 분양가 할인을 불사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이미 여러번 문제되었던 것입니다. 수도권까지 올라온 것 뿐입니다.

분양가 할인은 기존 입주자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연필을 1,000원 주고 샀는데, 돈 내고 돌아서자 마자 주인이 똑같은 연필을 900원에 판다고 소리치면 누구라도 기분 나쁩니다. 아파트라면 많게는 몇 억씩 차이가 나는 셈이니 기분이 나쁜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법적으로 기존 입주자들이 건설사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인 법리상으로는 "No"입니다. 기존 입주자들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아파트 분양계약은 일종의 매매계약입니다. 건설사가 입주자들에게 아파트를 얼마에 파는 것입니다. 연필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연필을 얼마에 팔 것인지는 가게 주인 마음입니다.

매매계약은 법적으로 채권 채무관계를 만들어냅니다. 민법상 재산권에는 채권과 물권이 있습니다. 물권은 소유권이나 저당권 같은 것인데, 물권은 그 특성상 어느 누구에게나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채권은 다릅니다. 채권은 나와 계약을 맺은 상대방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기존 입주자와 건설사가 분양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그 분양가를 다른 신규 입주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채권의 기본적인 성질입니다. 따라서 기존 입주자들이 건설사에게 분양가 인하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분양가 인하 문제는 기존 입주자와 건설사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신규 입주자와 건설사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산 집과 똑같은 집을 몇 달 되지도 않아서 1억씩 싸게 판다고 하면 누구라도 억울할 것입니다. 분양가 인하액만큼을 건설사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어야 정당하다는 기분도 듭니다. 억울하지만 법적으로는 비싸게 주고 산 사람이 잘못입니다. 청약을 할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면 좀 더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판단의 문제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법리로 바라본 법률관계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기존 입주자들은 상당수가 정말로 억울한 사람들입니다.

미분양 사태가 벌어져 분양가 할인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았다면 청약을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존 입주자들은 분양계약 당시 "거의 다 분양되었다", "조금만 늦으면 물량이 동이 난다"는 등등의 말을 듣고 청약을 합니다. 미분양 사태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듯 자신만만한 건설사들에 속아서 아파트를 사게 됩니다.

이것은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사기입니다. 상대방을 속여서 맺은 계약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들은 계약서에 나타나 있는 게 아닙니다.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계약서에는 분양가가 얼마이고 언제 입주한다는 것밖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서면만으로 보면 건설사들은 전혀 잘못한 게 없습니다.

기존 입주자들이 건설사에게 분양가 차액분을 환불해 달라고 하면 건설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은 소송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서면으로 작성되지 않은 부분은 입증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상대는 국내 굴지의 건설사와 대형 로펌입니다.

아파트 청약은 신중해야 합니다. 집값 하락세의 조짐이 보이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법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도 결국 이렇게 터졌습니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팔려는 사람은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고 합니다. 점점 수요는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가고, 가격은 하락합니다. 자산 가치가 폭락하면서 은행들은 주택을 담보로 대출한 돈을 모두 회수할 수 없게 될까봐 늦기 전에 자금을 회수합니다.

영국은 한때 부동산 버블 붕괴로 전 국민의 1/3의 주택을 차압했다고도 합니다. 만일 우리나라도 버블의 붕괴 시점에 온 것이라면, 앞으로 아파트 관련 소송이 늘어날 것입니다.

--변호사 김흥주(khj348@gmail.com)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hjkim348.egloos.com/tb/114925 [도움말]

덧글

댓글 입력 영역